나눔의 가치를 잇는 아버지기증자 유가족 임원채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했던 아들은 생의 끝에서도 생명나눔이라는 선물을 남겼다. 기증자 故 임남규 군의 아버지 임원채 님은 아들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며 생명나눔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 왔다.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임원채 님의 이야기는 힘든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것이다.

2009년, 큰아들인 임남규 군이 생명나눔을 실천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는데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드님이 그리우실것 같습니다.

남규는 한마디로 ‘착한 아이’였어요. 맏아들로 커서 그런지 항상 동생이나 주위 사람들한테 양보하고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죠. 아이들이 어릴 때 같이 바다낚시를 가곤 했는데, 남규가 처음 물고기를 잡았을 때 굉장히 좋아하던 순수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남규한테는 뇌동정맥기형이라는 선천성 질환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 축구를 하다 갑자기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다가 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공부 못해도 좋으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했어요.
남규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밤중에 갑자기 두통이 심하다고 하는 거예요. 바로 구급차를 불러서 응급실에 갔고, 수술했는데도 결국 깨어나지 못했죠. 아들 상태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뇌사장기기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병원에 먼저 말을 꺼냈어요. 아이를 보내게 되면 어차피 몸은 없어지는 건데, 우리 아들로 인해 누군가가 살게 된다면 좋겠다 싶었죠. 남규가 평소에 헌혈을 많이 했던 것도 생각났고요. 아내한테도 이야기하니 흔쾌히 동의하더군요.
그 당시 인체조직기증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장기기증을 하면서 코디네이터가 뼈도 기증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남규와 같은 나이의 여학생이 하반신 뼈를 절단하게 됐다고요. 어린 친구가 뼈를 이식받아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인체조직기증에도 동의했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우리 아들이 자주 생각나요. 남규하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랑은 아직도 가끔 연락하거든요.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스포츠센터 같은 것도 운영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남규가 살아있었으면 지금도 같이 어울렸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죠.

남규 군을 먼저 떠나보내고 많이 힘들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 생명나눔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하셨다고요. 유가족, 수혜자, 기증희망등록자 등으로 구성된 ‘생명의소리합창단’에도 참여하고 계시지요?

2018년부터 합창단 활동을 했으니 벌써 꽤 오래됐네요. 원래 음악과는 접점이 없는 사람이라 합창단도 전혀 생각을 못 했는데, 유가족 모임에 갔다가 한번 해보라고 해서 얼떨결에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아내, 둘째 아들, 딸까지 온 가족이 다 했었는데 지금은 아내랑 저만 활동하고 있죠. 제가 참여했던 첫 번째 공연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합창곡 중에 ‘붉은 노을’이라는 곡이 있었는데, 남규가 살아있을 때 가장 좋아하던 노래였거든요. 장례식 때도 이 노래를 계속 틀어놨었어요. 정말 우연히 이노래를 부르게 된 건데, 무대에서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합창단을 하면서 새로운 가족을 만난 것 같아요. 비슷한 처지의 유가족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죠. 수혜자분들과 만나면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하세요. 저희한테 안 그래도 된다고 해도요. 같이 합창단 활동을 하는 유가족분들, 수혜자분들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학교나 기관에서 장기·인체조직기증에 대해 교육하는 ‘생명나눔 전문강사’, 기증자 유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멘토단’으로도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학생들에게 생명나눔에 대해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2020년부터 생명나눔 전문강사로 활동하게 됐어요. 사실 어린 친구들한테는 장기기증이 크게 흥미 있는 주제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처음 교육을 나갈 때는 조금 힘든 점도 있었죠. 지금은 최대한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딸아이한테 하듯이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너무 장기기증 얘기만 하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한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편이에요.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거니까요. 교육을 듣는 모든 학생이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제 얘기를 듣고 자신감, 자존감이 올라간다면 좋을 것 같아요.
유가족 모임 멘토단은 유가족끼리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서로를 치유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겪어보지 않은 사람한테는 가족을 먼저 보낸 이야기를 하기 어렵거든요. 그러다 보니 마음 깊은 곳에 하고 싶은 얘기를 담아두고 혼자 답답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다른 유가족분을 만나면 제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주로 질문을 해서 그쪽 얘기를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스스로 맘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큼 좋은 치료제는 없더라고요. 앞으로 유가족끼리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5회 생명나눔 주간 기념식 유공자 표창(9.14.)

올해 9월, ‘생명나눔 주간 기념식’에서 장기기증 활성화 및 생명나눔 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으로 표창을 받기도 하셨어요. 감회가 남다르셨을 듯합니다.

사실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받을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고요. 시상식 가서 보니까 상 받는 사람 중에 유가족은 저뿐이더라고요. 앞으로도 생명나눔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죠.
아직까지 우리나라 국민들이 장기기증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뇌사가 아니면, 유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기증이 어렵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기증희망등록만 해도 장기기증이 되는 걸로 알고 있더라고요. 생명나눔이라는 개념이 사회에 더 널리 알려진다면, 어렵게 설득하지 않아도 뇌사상태가 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기증하는 문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기증자 故 임남규 군

장기기증 또는 생명나눔을 한 단어로 표현해주실 수 있나요?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나눔, 기증, 희생은 모두 사랑이 없으면 할 수가 없어요. 남을 위하는 마음은 결국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나라의 별이 된 자랑스러운 아들, 임남규 군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남규야.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언젠가는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날 거야. 그때까지 행복하게 지내.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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